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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 덕후 제주 소년, 양자컴 판 뒤집다국내 첫 중성원자 활용···"독자 기술로 실용화 앞장"

고투백 2026. 7. 31. 09:51

제주도에서 자연 현상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며 성장한 송윤흥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인터넷 독학과 오름 위에서의 고민을 거쳐 물리학자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글로벌 기술 경쟁에 맞춰 1000큐비트 이상의 대규모 양자컴퓨팅 구축에 도전하고 있으며, 국내 연구진 성장과 학계·산업계를 잇는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제주도의 푸른 바다와 오름을 오가며 과학자의 꿈을 키운 연구자가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송윤흥 선임연구원이다. 남들이 많이 가지 않던 중성원자 양자컴퓨팅에 일찍 뛰어든 그는 국내 최초 이터븀 기반 양자컴퓨팅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제 1000큐비트 이상의 대규모 시스템에 도전하고 있다.

그가 뛰어든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로 풀기 어려운 복잡한 계산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할 차세대 기술로 꼽힌다. 기존 컴퓨터의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어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기술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양자컴퓨터를 구현하는 방식도 하나가 아니다.

초전도체와 이온트랩 등이 먼저 연구를 이끌어온 가운데 최근에는 중성원자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레이저로 원자를 붙잡아 원하는 위치에 배열하고 이동시킬 수 있어 대규모 시스템으로 확장하기 유리하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대학과 연구기관은 물론 글로벌 기업들까지 관련 연구에 뛰어들면서 경쟁도 빨라지고 있다.

송 선임연구원이 택한 것은 바로 이 중성원자 방식이다.

아직 국내 연구 기반이 충분하지 않았던 시기부터 연구를 시작해 미국과 한국에서 기술을 쌓았고, 현재는 이터븀 원자를 이용한 국내 독자적인 양자컴퓨팅 시스템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기반의 출발점이지만 이를 극복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과학기술을 직접 이룩해낸다는 것의 재미와 보람이 확실합니다. 현재 저희들이 열심히 기반을 마련하고 있을 테니 다양한 배경의 인재들이 합류해 같이 이룩해나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과학자의 꿈, 오름 위에서 다진 결심

제주에서 자란 송 선임연구원은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산과 바다를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보니 과학과 처음 가까워진 곳은 교실보다 자연이었다. 자연현상을 볼 때마다 '왜 그럴까'라는 궁금증이 생겼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과학은 자연스럽게 가장 좋아하는 분야가 됐다.

제주지역 과학영재교육원 지원을 하며 자연 속에서 혼자 품었던 궁금증을 수업과 실험을 통해 직접 풀어볼 기회가 생겼다. 주말이면 실험하고 보고서를 썼고, 방학에는 성산일출봉 등 제주 자연 속에서 며칠씩 머물며 수학과 과학을 공부했다.

특히 학교에서 아직 배우지 않았던 내용을 처음 접한 경험은 공부의 또 다른 재미를 알려줬다. 낯선 개념을 처음부터 하나씩 이해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단순히 과학 현상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데서 한발 더 나아가, 그 원리를 직접 파고드는 데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 관심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물리학으로 좁혀졌다.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가운데 자연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을 근본적인 원리로 설명하는 물리가 가장 궁금했다. 관심이 깊어질수록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만으로는 궁금증이 채워지지 않았다. 송 선임연구원은 모르는 것이 생기면 책과 인터넷을 직접 뒤지며 공부했다. 부모 권유로 학원을 다녀본 적도 있었지만 한 달 만에 그만뒀다. 정해진 진도를 따라가기보다 자신이 궁금한 것을 원하는 만큼 파고드는 공부가 더 잘 맞았다.

인터넷은 그런 그에게 또 하나의 교과서였다. 물리학 관련 온라인 카페에 들어가 사람들이 나누는 토론을 읽었고, 고등학생 때는 번역돼 나온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를 펼쳐 들었다. 학교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현대물리를 미리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좋아하는 공부를 자신의 방식대로 깊이 파고들었지만 진로에 대해서까지 늘 확신했던 것은 아니다. 남들처럼 선행학습을 하지 않았고 학교 성적도 최상위권은 아니었다. 과학 분야에서는 도내 대회에서 금상을 받을 만큼 두각을 보였지만 과학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평생 연구자의 길을 걸을 수 있을지 불안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송 선임연구원이 향한 곳은 학교 바로 옆 오름이었다.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면 홀로 정상까지 올라 푸른 바다를 내려다봤다. 그곳에서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그 과정에서 답도 조금씩 분명해졌다. 송 선임연구원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고, 그때의 다짐들이 흔들리지 않는 연구자로 성장하는 힘이 됐다"고 말했다.

◇ 비주류 '중성원자'에 던진 승부수, 국내 최초 이터븀 양자컴퓨팅으로

오름 위에서 스스로에게 던졌던 '과학자로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대학에 진학한 뒤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라는 고민으로 바뀌었다. 한양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송 선임연구원은 KAIST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그 답을 찾아갔다.

그 과정에서 만난 것이 '중성원자 양자컴퓨팅'이었다. 당시 중성원자를 활용한 양자 시뮬레이션에서는 이미 수백~수천 개의 원자를 한꺼번에 다루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많은 원자를 직접 제어하며 양자 현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은 송 선임연구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는 "원자 자체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때마침 송 선임연구원이 합류한 KAIST 안재욱 교수 연구실도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던 시기였다. 초고속 레이저를 주로 연구해온 안 교수 연구팀은 중성원자를 이용한 양자컴퓨팅으로 연구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고, 송 선임연구원도 이 과정에 함께했다.

초기 연구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는 무작위로 포획된 원자를 원하는 위치에 다시 배열하는 일이었다. 안 교수 연구팀은 기존 레이저 연구에서 축적한 기술을 활용해 이 문제에 도전했고, 2016년 미국 하버드대와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 연구진과 거의 같은 시기에 원하는 형태의 원자 배열을 만드는 기술을 독립적으로 구현했다.

성과를 냈지만 연구를 이어갈수록 새로운 고민도 생겼다. 당시 송 선임연구원이 다루던 시스템은 큐비트의 정보가 유지되는 시간이 짧아 실제 양자컴퓨터에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중성원자의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실제 연산에 사용할 수 있는 큐비트를 직접 만들고 제어하는 연구를 더 깊게 해보고 싶었다.

그는 "제가 하고 있는 것과 실제로 하고 싶은 것 사이의 괴리감이 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박사학위를 마친 뒤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UW-Madison)으로 향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곳에는 오래 전부터 중성원자 양자컴퓨팅을 연구해온 선구자 마크 사프만 교수가 있었다.

이곳에서 송 선임연구원은 사프만 교수와 함께 개별 중성원자를 큐비트로 정밀하게 제어하고 여러 큐비트를 얽히게 만든 뒤 이를 이용해 양자 알고리즘을 구동했다. 연구 결과는 2022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 연구팀은 최대 6개의 큐비트로 GHZ 얽힘 상태를 구현하고 양자 위상 추정과 양자근사최적화알고리즘(QAOA)을 중성원자 양자컴퓨터에서 구동했다. 송 선임연구원은 공동 제1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송 선임연구원은 기술만큼 중요한 또 하나의 조건도 확인했다. 서로 다른 전문성을 가진 연구자들이 하나의 시스템을 함께 만드는 '팀 연구'였다.

당시 사프만 교수 연구실은 양자기업 콜드퀀타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었다. 박사급 연구자를 포함한 수십 명의 연구자와 광공학·전자공학·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이 역할을 나눠 하나의 양자컴퓨터를 만들었다. 송 선임연구원이 KAIST에서 경험했던 대학 연구실과는 연구 규모와 방식 모두 달랐다.

송 선임연구원은 "규모가 일반 대학 연구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며 "여러 전공의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양자컴퓨터를 제대로 만들려면 팀 단위 연구가 정말 중요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경험은 귀국 후 연구할 곳을 정하는 기준이 됐다. 중성원자 양자컴퓨터를 계속 만들려면 서로 다른 전문성을 가진 연구자들이 오랜 기간 하나의 시스템을 함께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국내에서 그런 연구를 이어갈 곳으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주목했고, 그중 표준연이 자신의 연구 방향과 가장 잘 맞았다.

표준연은 당시 중성원자 양자컴퓨터 개발을 준비하고 있었고, 문종철·한정호 박사를 중심으로 이터븀(Yb)을 활용한 양자 시뮬레이션 연구 기반도 갖추고 있었다. 송 선임연구원에게는 KAIST와 미국에서 쌓은 광집게 기반 양자컴퓨팅 기술을 이터븀에 접목해볼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렇게 표준연에 합류한 송 선임연구원은 선배 연구자들이 축적해온 이터븀 제어 기술을 바탕으로 광집게 방식의 양자컴퓨팅 시스템 구축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연구팀은 광집게로 이터븀 원자를 하나씩 포획해 원하는 위치에 배열하는 시스템을 구축했고, 이후 약 100개의 원자를 동시에 배열할 수 있는 수준까지 규모를 키웠다. 국내에서 이터븀을 이용한 중성원자 양자컴퓨팅 연구를 본격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하드웨어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원자를 많이 배열하는 것과 함께 각각의 원자를 정확하게 읽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성능도 끌어올렸다. 연구팀은 최근 광집게에 가둔 이터븀-171 단일 원자의 이미징 충실도와 생존률을 모두 99.9% 이상으로 구현했다.

송 선임연구원은 "두 박사님은 이터븀을 이용한 양자 시뮬레이션 연구 기반을 이미 갖추고 있었지만 광집게를 이용한 양자컴퓨팅은 아니었다"며 "반대로 저는 광집게 전문성은 있었지만 이터븀에 대해서는 모르는 상태였다. 서로의 강점이 합쳐지면서 국내 최초로 이터븀 기반 양자컴퓨팅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작한 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100큐비트에 가까운 배열을 만들 수 있게 됐다"며 "국내에서 이터븀 양자컴퓨팅 연구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 제가 해온 일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100큐비트 넘어 1000큐비트로···세계와 격차 좁힐 다음 도전

송 선임연구원은 이제 1000큐비트 이상의 중성원자 양자컴퓨터 구축에 도전하고 있다. 큐비트 규모를 키우면서도 수많은 원자를 안정적으로 제어하고 연산에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다.

그가 지금을 중요한 시기로 보는 이유는 세계 중성원자 양자컴퓨팅 경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서다. 미국이 기술을 선도하는 가운데 최근에는 중국이 과학굴기를 앞세워 빠른 속도로 뒤쫓고 있다.

송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가장 앞서 있다고 보지만 중국의 속도도 정말 빠르다"며 "예전에는 그렇게 눈에 띄지 않았는데 최근 발표되는 결과를 보면 미국의 최신 시스템과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구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앞서 연구를 시작한 해외 팀들이 있는 만큼 국내에서도 기술 격차가 더 벌어지기 전에 대규모 시스템을 구축할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는 "100큐비트급 기본 셋업은 만들어 놨고, 지금은 1000큐비트급 혹은 그보다 큰 시스템을 어떻게 구현할지 연구하고 있다"며 "거리가 너무 멀어지면 안 된다. 지금이 그래도 적정한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 선임연구원이 해외 연구 현장에서 특히 크게 느낀 차이는 인력 규모다. 중국에서는 하나의 기관 안에서도 같은 주제를 여러 연구팀이 동시에 수행할 정도로 많은 연구자와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대학과 양자기업들이 좋은 연구환경과 높은 보상을 내걸고 세계 각국의 연구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반면 표준연에서 중성원자 양자컴퓨팅을 연구해온 핵심 인력은 최근까지 3명 수준이었다. 이들마저 하나의 연구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여러 과제를 함께 수행해야 했다.

송 선임연구원이 미국에서 경험한 '팀 단위 연구'를 국내에서도 강조하는 이유다. 위스콘신대 매디슨에서는 광공학·전자공학·소프트웨어 등 서로 다른 분야의 연구자 수십 명이 역할을 나눠 하나의 양자컴퓨터를 만들고 있었다. 1000큐비트급 시스템을 구현하려면 국내에서도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가 한 목표를 놓고 장기간 협업할 수 있는 연구환경이 필요하다고 본다.

플래그십 프로젝트는 이런 연구 기반을 넓힐 계기가 되고 있다. 새로운 연구자가 합류하기 시작했고, 미국 연구진과의 공동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스탠퍼드대 최준희 교수 연구팀은 표준연과 비슷한 중성원자 실험 시스템을 연구하며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있고, MIT 최순원 교수 연구팀은 이론 분야에서 힘을 보태고 있다.

송 선임연구원은 1000큐비트급 시스템 구축 과정에서 국내 연구진도 함께 커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연구환경을 갖춰야 해외에서 경험을 쌓은 연구자들도 한국에서 연구를 이어갈 선택지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1000큐비트 시스템을 구축한 뒤에는 양자컴퓨터를 실제 문제에 활용하는 연구가 기다리고 있다. 기존 컴퓨터로 풀기 어려웠던 문제에 도전하고, 연구 과정에서 확보한 기술을 산업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것이 송 선임연구원이 그리고 있는 다음 단계다.

그는 "과학자는 자연에 대해 각자 궁금한 부분을 탐구하면서 인류의 지식을 넓혀나가는 것이 본분이라고 생각한다"며 "제가 연구하는 양자정보·기술 분야는 현재 과학이 새로운 산업의 태동을 이끄는 입구에 와 있다. 학계와 산업계가 원활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역시 출연연 연구자로서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1000큐비트 이상의 이터븀 양자컴퓨팅 시스템을 잘 구축해 지금까지 인간이 하지 못했던 영역에서 양자컴퓨터가 실제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싶다"며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 그런 기반을 만들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출처 : 헬로디디]